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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 칼럼

영어칼럼아이가 영어를 거부해요

새벽달
2020-07-25
조회수 7437

2020/7/25/토 


아이가 영어를 거부하는 이유는 꽤 다양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 영어가 '안 들려서'다. 못 알아들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서. 또다른 이유는, 그 영어로 엄마가 나란 존재를 '판단'할 것이고, 모멸감을 주고, 두고두고 놀리고 괴롭힐 것이 뻔하다는 것을 아기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도망친다. 영어가 무서운게 아니라 엄마의 그 판단, 그 단정, 그 호들갑, 그 반응이 무서운 거다. 어떤 너댓살 아이는 엉엉 운다. 그정도 강도의 공포다. 


전자의 경우 해결책은 간단하다. '들릴만한 소리'를 들려주면 된다. 아, 우리애는 ABCD도 모르는데 (알파벳 몰라도 영어그림책 읽는데는 지장 없음. 한국어의 자음+모음, 파닉스 몰라도 엄마가 읽어주는 한글그림책 재미나게 깔깔깔 웃으며 듣고 읽듯) 영어그림책을 읽어준다고 알아들을까요? 거절할 게 뻔한데.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어린아이들의 뇌, 그들의 천재적인 언어습득능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Good night Moon" 이나 도널드 크루의 "Rain" 을 읽어줘 보시라. 영어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도 읽자마자 이해한다. "rain on a tree",  rain 이란 단어를 낭독할 때 빗방울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tree 를 읽는 순간 엄마가 나무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tree 가 무슨 말이에요? 한국어로 해석해주세요" 할 아이는 없다. 성질 급한 엄마가 한국어로 해석하지 않아도, 아이는 그 영어소리가 갖는 뜻을 추측하고 앞뒤 문장의 맥락속에서 그 의미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이런 능력이 축적되어,, 영어 원서를 한글 소설 읽는 편안하게 읽고, 수능영어 공부 안해도 영어지문을 가볍게 속독해서 뽀송뽀송하게 답 찾는 고딩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영어날개를 달아주는 첫 걸음은, 해석없이 영어단어가 갖는 뜻을 문맥속에서 찾아 유추하는 훈련의 반복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들릴만한 영어그림책'을 잠자리에서 밤마다 읽어주고 재우는 것. 


엄마표영어가 안되는 이유는 사실 '안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 이런 걱정 하느라 시작조차 '안하고' 시간을 끄는데 영어가 될 리가 없지 않는가. 고민하고 안절무절 걱정할 시간에, 도서관에서 한줄짜리 그림책, 영포자인 나도 읽어줄 만한 그림책을 하나 꺼내보자. 아니, 단어책도 좋다. 아이가 차를 좋아하면 "탈것들" 영어단어그림책을 꺼내들고와 반이상은 한국어 수다이더라고, 그 영어책을 읽어주면 '그 창대한 열매 맺을 엄마표영어세계 그랜드 오픈'인 거다. 우선 일주일 닥치고 읽어줘보자. 영어그림책을 일단은 읽어줘야 아이 반응을 관찰 할 수 있고, 아이의 반응을 봐야 그 다음 스텝을 결정할 것 아닌가. 아 일단 읽어줘 보시라고요. 한달, 두달, 넉달 빠짐없이 읽어준 엄마는 질문부터 질이 다르다. 희망찬 간증이 질문에 선행된다.  


익숙하지 않으면 거부하게 마련이다. 생후 10년간 국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인데,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초4 음악교과서에 가야금산조가 나온다'고 해서, 애한테 황병기의 가야금산조를 틀어주는 꼴이다. (내 남편이 나한테 이렇게 어설프게 뭔가를 시도한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가) 그 어떤 아이가 "어머님, 이 가야금 소리는 마치 계곡물이 바위를 감싸고 지나가면서 내는 물소리와도 같고.. 버드나무잎사귀가 바람에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와도 같아, 저에게 평온함을 주네요. 참 아름다워요. 또 들을래요. 또 틀어주세요, 또요!" 하리오. 


거부하는 아이가 이상한 것도 아니요,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넣어준 영어소리가 없는데, 해준게 없는데 "왜 해도 안되요?"라고 말하는 엄마가 문제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 안되지? 갸우뚱 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아이에게 날마다 읽어주는 책 제목을 연필로 적어보자. 하루에 몇권을 읽어줬는지, 한달에 몇권을 읽어줬는지. 표에 써보면 한눈에 보인다. 내가 생각보다 애한테 영어그림책이나 영상을 많이 노출하지 않았구나. 한 게 별로 없구나. 양이 터무니없이 적구나.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엄마는 "우리 애는 왜 이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 한 것"이 거의 없음을 자각해야, "오늘부터 제대로 행해야 겠구나"라는 결심이 선다. 그 바탕 위에라야, 그 '시작'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끊김없이 '지속'된다.  


아이가 영어를 거부하는 원인이 전자인 것으로 추정되면, '해석이 필요없이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르치는 행위자체로 해석이되는' 쉬운 그림책을 다시 골라보자. 도서관에서 10권을 고르면 2-3권 대박책 겨우 건질까 말까가 일상인것이 엄마표영어다. 엄마표영어는 '좋은 책' '좋은 영상' 을 고르는 수고가, 밤마자 잠자리에서 목 아파라 낭독해주는 낭독노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매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아이의 반응을 살펴 아이 취향에 맞는 스토리, 그림풍, 작가, 주제를 파악해 가다보면 아이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대화가 풍성해진다. (사실 어린아이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자면 굉장한 사교록이 필요한데, 나처럼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엄마는 그 대화가 고욕이었다. 영어그림책이 있어서 그나마 이야기를 꺼내고 끌어갈 수 있었다. 고마워 그림책.) 그림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면, 책 고르는 안목도 생긴다. 눈에 띄는 작가도 하나 둘 는다. 그림책 읽어주는 낭독 10년이면 그 어떤 그림책 전문가들보다도 깊은 내공을 얻게 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림책 주인공들을 통해 아이의 마음도 헤아려볼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육아서보다, 심리서적보다 더 실질적인 도움과 감동을 얻곤 한다. 왜 안 읽어. 


아이의 영어거부에 넉다운이 되어 주저 앉는 엄마들의 공통점은 '별로 해 준 것이 없다'이다. 책을 읽어준 시간이 총량이 적다. 쌓인 추억도 거의 없어 뿌리가 약하다. 잠자리에 책을 읽는 달콤함이 가족문화로 뿌리내리지 못한 경우 쉽게 포기한다. 반면 한달, 두달, 6개월 1년. 밤마다 책 읽어주는 낭독 노동을 "행"한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 그까이꺼. 하지뭐. 유연하다. 유연한 엄마는 게임 끝. 그 여유와 배짱은 "행"함에서 온다. 날마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욕구가 채워질만큼, 기분좋게 책을 읽어준 엄마는 배짱이 있다. 낭독노동 그 행함과 누적된 시간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애가 영어를 거부해요.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하고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오늘은 좀 피곤해? 그럼 한글책 읽자" 오늘은 1보 후퇴하지만, 내일 2보 전진을 위해 미리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떠올리며 미소지을 것인가. "내일은 정신을 쏘옥 빼놓을 OOOO을 책으로 도전해봐야겠다. 넘어올 수 밖에 없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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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거절'은 엄마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거절도 없어요. 

잘 하고 계신 거에요. 

내 어깨를 두 팔로

꼬옥 안아주세요. 


유치원 자퇴후, 집앞도서관에 출퇴근 하던 시절. 9시에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집 서재였어요. (2호 5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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